40대 공무원 A씨는 지난해 말 서울 강서구의 30평대 아파트를 급히 사들였다. 부동산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집값이 들썩거리자 불안한 마음에 주말마다 동네 부동산을 돌아다니다 운 좋게 급매물을 발견했다고 한다. 주변 시세가 6억원 수준이었는데, 이 물건은 전세 3억5000만원에 매매가 5억원에 나왔다. A씨는 은행에서 신용대출을 최대한도인 1억원까지 끌어 썼다. 그걸로도 자금이 모자라자 그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자신의 퇴직연금을 담보로 5000만원을 빌렸다.
최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법인과 다주택자들이 내놓은 매물을 30대가 영끌해서 샀다는데 안타깝다”고 해 논란이 됐다. ‘곧 집값이 떨어질 텐데 젊은 층이 조바심 때문에 어리석은 투자를 했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공무원들도 연금까지 담보로 잡혀가며 ‘영끌’로 집 사는 데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공무원연금공단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상훈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공무원 주택 특례 연금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A씨처럼 연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집을 산 공무원은 올해 상반기에만 1231명으로 지난해 전체 대출자(1017명)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금액도 총 740억9500만원으로 작년 한 해 대출액(449억8400만원)의 1.6배에 달했다. 올해부터 대출 한도가 5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오른 것을 감안하더라도 눈에 띄는 증가세다. 지난 7월 10일 시작한 올 3분기(7~9월)의 공무원연금 주택대출 신청도 개시 열흘 만에 마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청이 몰리며 준비한 대출금 재원이 모두 바닥났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연금공단을 통해 연금을 담보로 주택 구입 비용을 연 3% 금리에 최대 7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일반 대출과 달리 공단 사이트에서 신청하면 3~4일이면 돈이 나온다. 또 대출 규제(DSR) 한도에도 포함되지 않아 집을 살 때 일반 직장인보다 돈을 더 많이 빌릴 수 있다. 하지만 공무원 입장에서 연금 담보 대출은 자신의 노후 자금을 끌어다 써야 해 정말 급할 때만 쓰는 ‘최후의 수단’이다.
김상훈 의원은 “올 상반기 집값이 폭등하면서 급하게 대출을 당겨 집을 산 공무원이 많다는 의미”라며 “공무원들이 대출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연금 대출까지 영끌해서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무원뿐 아니라 공기업 직원들도 사내 대출을 총동원해 영끌에 나서고 있다. LH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공항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 등 국토교통위 산하 8개 공공기관의 사내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이 공공기관들의 사내대출 건수는 2406건, 대출금 액은 661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거의 1.5배로 늘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벌써 1449건에 456억원이 대출됐다. 이 공기업들은 주택구입자금 또는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2%대 저금리에 자금을 빌려주는데, 대출 한도는 보통 2000만~5000만원이며 주택도시공사처럼 최대 2억원이나 되는 곳도 있다. 공기업 사내대출도 공무원 연금대출과 마찬가지로 대출 규제 적용을 받지 않아 공기업 직원들이 집을 살 때 부족한 자금을 동원하는 수단으로 많이 활용된다.
김현미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영끌해서 집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앞으로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을 생각할 때를 기다렸다가 합리적 가격에 분양받는 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저희는 조금 더 (매수를)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 등으로 서울에서 아파트 분양 물량이 사라지면서 청약에 도전할 기회 자체가 없어졌다. 또 청약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설령 분양 물량이 나오더라도 30대는 사실상 당첨이 불가능한 수준이 됐다. 지난 7~8월 서울 새 아파트 당첨자의 평균 최저 청약가점은 60.6점으로, 4인 가족을 둔 30대 가장이 받을 수 있는 청약가점 최대치(57점)를 넘어섰다. 결국 지금까지는 김 장관의 말과 정반대로 ‘영끌’로 집 산 사람들이 승자가 됐다. 공무원 연금을 담보로 A씨가 산 집은 현재 시세가 9억원으로 매입가보다 4억원 올랐다. A씨는 “당시엔 연금까지 건드려 찜찜했지만 지금은 웃음만 나온다”고 했다.
September 09, 2020 at 01:0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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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퇴직연금 담보로 집샀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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