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명희 지지” 거부권 행사… 총장선거, 美-中간 대립으로 치달아
兪, 물러나자니 美 관계 어긋날수도… 버티자니 국제사회 비판 우려돼
전방위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임을 둘러싸고 또다시 격돌했다. WTO 다수 회원국이 중국이 지지하는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66)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미국이 이를 거부하며 한국의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53·사진)을 공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WTO 선거전이 통상패권을 쥐려는 미중 간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한국 정부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29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WTO는 28일(현지 시간) “차기 사무총장 결선 투표에서 나이지리아의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유 본부장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WTO 회원국 164개국 가운데 중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일본, 아프리카 국가 상당수가 오콘조이웨알라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에 대한 사실상의 거부권을 행사하고 유 본부장을 공식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USTR는 유 본부장 지지 성명에서 “WTO는 매우 어려운 시기로 중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25년간 다자간 관세협상이 없었고, 분쟁 해결 체계가 통제 불능”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WTO가 중국에 편향적이며, 중국의 불공정한 통상 관행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줄곧 비판해왔다.주요기사
반면 중국은 오랫동안 아프리카에 거액을 투자하며 공을 들여왔고, 한국보다는 나이지리아와 손잡았을 때 WTO 내 영향력을 키우기 유리하다고 판단해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EU의 지지 또한 트럼프 정부의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무역 갈등을 빚는 일본은 유 후보의 낙선을 위한 물밑작업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WTO는 선호도 조사 형식으로 치르는 결선 투표 결과를 모든 회원국이 수용하는 전원합의(컨센서스)를 거쳐 사무총장을 선출한다. 1995년 창립 이후 결선 투표에서 뒤진 후보는 자진 사퇴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선 투표에 불복해 최종 투표까지 간 전례가 없다. WTO 최고기구인 상소기구가 미국의 반대로 유명무실화된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이 물러서지 않을 경우 사무총장 선출이 마감 시한인 11월 9일을 넘겨 장기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11월 3일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WTO 사무총장 선거 구도가 또다시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중 등 강대국 간의 알력 다툼에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미국이 유 본부장을 적극 지지하는 상황에서 결선 투표 결과를 받아들여 자진 사퇴하면 대미 관계가 어긋날 우려가 있다. 반면 회원국 합의 과정에서 역전을 노리며 계속 버티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무리한 버티기로 WTO의 수장 공석 사태를 장기화하면 미국과 한데 묶여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교부 안팎에선 결선 투표에서 밀린 유 본부장이 ‘우아한 퇴장’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기류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한국은 다자외교와 관련 절차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그동안 쌓은 이미지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세종=구특교 kootg@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 조종엽·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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